1139~1193)이 터를 닦고, 마음 속에 있는 성(性)만이 이(理)라고 하였다.”고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우주가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우주다. 이런 경험에서 그는 주자가 말하듯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一木一草)’를 포함하여 그 많은 사물에 들어 있는 각각의 이(理)를 다 찾는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발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알라, 陽明, 그 때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얼른 보아 순서는 다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고 하는 기본 원리를 근거로, 똑 같은 이(理)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육상산의 ‘심즉리(心卽理)’라는 가르침에 접하게 되었다. 주자는 무극을 무형상(無形象), 陽明, 象山, 양명학(陽明學) 혹은 심학(心學)이었다. 그는 형 육구소와 함께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오는 무극(無極)의 문제를 놓고 주자와 의견을 달리했다. 그가 열세 살 때 ......
사회과학 자료 삶과 철학 - 육왕심학에 대해서
[사회과학] 삶과 철학 - 육왕심학에 대해서
삶과 철학
- 육왕심학 -
상산(본명 육구연(陸九淵))은
신유학(新儒學)에는 두 갈래 큰 흐름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정이(程, 1032~1085)와 주희(朱熹, 1130~1200)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는 정주학(程朱學) 혹은 이학(理學)이고, 다른하나는 정호(程顥, 1033~1108)가 시작하고 육상산(陸九淵, 象山, 1139~1193)이 터를 닦고, 왕양명(王守仁, 陽明, 1473~1529)이 완성한 육왕학(陸王學), 양명학(陽明學) 혹은 심학(心學)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주학이 대세를 이룬 반면 양명학은 거기에 비해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상 체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르침은 오늘도 깨우쳐 주는 바가 크기에 육상산, 왕양명 두 스승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한다.
그가 열세 살 때 하루는 책을 읽고 있다가 책에서 ‘우(宇)’라는 글자와 ‘주(宙)’라는 두 글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었...삶과 철학
- 육왕심학 -
상산(본명 육구연(陸九淵))은
신유학(新儒學)에는 두 갈래 큰 흐름이 있었다. 그 하나는 정이(程, 1032~1085)와 주희(朱熹, 1130~1200)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하는 정주학(程朱學) 혹은 이학(理學)이고, 다른하나는 정호(程顥, 1033~1108)가 시작하고 육상산(陸九淵, 象山, 1139~1193)이 터를 닦고, 왕양명(王守仁, 陽明, 1473~1529)이 완성한 육왕학(陸王學), 양명학(陽明學) 혹은 심학(心學)이었다. 역사적으로 정주학이 대세를 이룬 반면 양명학은 거기에 비해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상 체계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가르침은 오늘도 깨우쳐 주는 바가 크기에 육상산, 왕양명 두 스승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기로 한다.
그가 열세 살 때 하루는 책을 읽고 있다가 책에서 ‘우(宇)’라는 글자와 ‘주(宙)’라는 두 글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 때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우주가 곧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곧 우주다. 동쪽 바다에 성인이 나타난다면 똑 같은 마음(心), 똑 같은 이(理)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내 속에 있는 심(心)은 이(理)와 마찬가지로 분화되지 않은 보편적 원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육상산은 9년 연상인 주자와 서신으로 뜨거운 논쟁을 하며 서로를 비판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해 존경의 염을 품고 있었다. 그는 형 육구소와 함께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오는 무극(無極)의 문제를 놓고 주자와 의견을 달리했다. 주자는 무극을 무형상(無形象), 무형적(無形迹)의 절대적 초월성으로 이해한 반면, 육상산 형제는 무극이 노자의 말일 뿐 『주역』에는 없는 개념이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宇와 宙’자 보고 깨달음 경험
육상산이 37세 되던 해에는 아호사(鵝湖寺)라는 곳에서 주자를 직접 만나 토론을 했는데, 이것이 중국 사상사에서 유명한 ‘아호지회(鵝湖之會)’라는 것이다. 여기서 토의 주제는 수련법이었다. 주자는 격물(格物)·궁리(窮理)가 여러 가지 사물을 하나하나 널리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본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하여, 육상산은 그 많은 사물을 다 섭렵한다는 것은 ‘지리(支離)’한 일이라 했다. 그는 “마음이 곧 이(心卽理)”라고 하는 기본 원리를 근거로, 마음이 여럿 있는 것이 아니라 심일심(心一心)이며, 이(理)가 여럿 있는 것이 아니라 이일리(理一理)이므로 결국 내 마음을 밝혀 아는 것이 바로 사물과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를 깨닫는 것이라 보았다.
주자가 ‘성즉리(性卽理)’라고 한데 반하여 육상산이 ‘심즉리(心卽理)’라 했다고 하는 것은 비록 글자 한자 차이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학과 심학을 나누는 기본 핵심이었다. 주자는 앞에서 본 것처럼 마음도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이(理)와 기(氣)로 구성된 하나의 구체적 사물이기 때문에 마음이 이(理) 자체일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심(心)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고 성은 하늘에서 준 순수한 선성(善性)이고, 정은 우리가 가진 감정으로서 인욕(人欲)이라 주장하며, 마음 속에 있는 성(性)만이 이(理)라고 하였다. 그러나 육상산은 성과 정을 아우르는 마음이 곧 성(性)이고 그 마음이 곧 이(理)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며 마음과 성, 마음과 이(理)를 구별하는 것은 오로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기에 앞에서 본 것처럼 그는 주자와 달리 마음을 밝히기만 하면 거기서 전체를 관통하는 이(理)를 볼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心은 理와 같은 보편적 진리
육상산은 수행법으로 세 가지를 권한다. 자신을 알라, 배운 것을 실제적인 윤리 생활에 적용하라, 그리고 정좌(靜坐)하라는 것이다. 얼른 보아 순서는 다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에 해당하지 않나 생각할 수 있다.
육상산은 49세에 사숙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후 몇 년 있다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육상산의 사상은 명(明)대의 진백사(陳白沙, 1428~1500)를 거쳐 왕양명(王陽明)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왕양명은 (왕수인(王守仁))
왕양명도 처음에는 그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던 주자학에 심취했다. 21세 때 모든 사물에 있는 이(理)를 찾으라는 주자의 격물궁리(格物窮理)의 가르침에 따라 뜰에 있는 대나무 앞에서 일주일을 밤낮으로 앉아 대나무의 이(理)를 찾으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해도 대나무의 이(理)가 무엇인지는 찾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병만 얻었다. 이런 경험에서 그는 주자가 말하듯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一木一草)’를 포함하여 그 많은 사물에 들어 있는 각각의 이(理)를 다 찾는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발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산중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도중, 어느 날 밤 갑자기 깨침에 이르렀다. 『대학』의 기본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육상산의 ‘심즉리(心卽理)’라는 가르침에 접하게 되었다. 심(心)을 중심으로 하는 육상산의 학문이야 말로 ‘맹자의 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고, 57세로 죽기까지 심학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이런 면에서 육상산의 학문은 사실 왕양명에 의해 다시 발굴되고 새롭게 빛을 보게 된 셈이다.
심즉리(心卽理)는 맹자의 학 계승
왕양명의 주된 관심은 수행방법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적 실천이었다. 왕양명도 육상산과 마찬가지로 심(心)이야 말로 이(理) 자체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이(理)를 알기 위해서 우리 속에 있는 심(心)을 궁구하면 된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에 성(誠)과 경(敬)을 다할 뿐이지, 구태여 외부 사물의 이(理)를 섭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경서(經書)라든가 정치적 권위나 질서 등 외부적인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 생각일 수도 있다. 어느 면에서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이라든가 교외별전(敎外別傳)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왕양명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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